많은 기술사 수험생들이 각각의 동기가 다릅니다.
그럼 저의 동기는 무엇이었길래 31살, 마냥 젊은 나이에 준비하게 되었을까요?
아이와의 첫만남
세상의 많은 아빠들은 첫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아마 저를 지금 이 자리까지 이끌어준 원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1년 첫째 딸이 태어났을 때, 저도 똑같은 감정에 휩싸였지요. 딸아이를 바라보는 순간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였고, 저에게 닥친 현실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직장은 안정적이었고, 매달 나오는 급여로 가정의 생활은 충분히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째 아이를 안은 그날 밤, 깊이 잠들지 못하고 여러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제가 더 나은 아빠가 되기 위한 방법에 대해 고민했지요.
첫째 딸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 저는 그저 아빠가 아니라, 가족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의 다짐, 그건 단순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딸이 더 좋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지요.
그게 바로 발송배전기술사라는 꿈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술사가 되면 저의 커리어는 한 단계 더 올라갈 것이고, 경제적으로도 더 안정적인 미래를 제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하루에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빡빡한 일정 속에서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와이프와 딸을 외면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딸아이와 함께 놀 시간에 책을 들고 공부를 했고, 어린이집에 딸을 보내고는 뒤돌아서는 제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모릅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딸을 옆에서 지켜보지 못한 날들이 쌓여갔고, 퇴근 후 집에 들어갔을 때 딸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빠로서 더 많이 함께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몰려왔고, 그게 저를 더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제가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단지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딸과 가족을 위한 선택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공부가 힘들고, 정신적으로 지칠 때마다 딸이 웃는 모습을 상상하며 다시 책을 펼쳤습니다. 그 순간들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저에게 더 큰 동기부여가 되었지요.
이 과정에서 와이프도 참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빠로서의 책임감만큼이나 남편으로서의 미안함도 컸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와이프는 제 결정을 지지해줬고, 제 공부를 위해 많은 것들을 양보해줬습니다. 그녀의 응원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이 시험을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시간이 흘러 발송배전기술사 시험에 최종 합격했을 때, 제 머릿속에는 그간의 수많은 밤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새벽에 책을 펴고, 아이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며 다시 다짐하던 순간들이요.
그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것입니다. 기술사가 된 이후, 저는 딸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천천히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결국, 제가 발송배전기술사를 준비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 다짐을 이루었고, 앞으로도 딸과 와이프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나 발송배전기술사를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그 길이 쉽지 않더라도 반드시 목표를 이루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도전하셨으면 합니다. 가족을 위한 선택은 언제나 옳습니다.